많은 양의 눈이 내린다 했다. 형의 죽음은 나를 이 답답한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했다. 한숨을 내쉬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찾는데 손끝엔 잡히는 게 없다. 아, 그제야 떠올랐다. 형이 폐암으로 죽었다는 것이.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병원 옥상에 멍하니 서서 올려다 보는 서울의 하늘은 흐릿하구나. 뭐 그 정도의 생각만 들었다. 담배도 안 피는 형이 나 대신 먼저 하늘로 가버렸구나. 같은 생각을 아예 안했다면 거짓말이지만. 형한텐 별로 애정이 없다. 어릴 때 잠시 함께 살았던 것뿐. 함께 동화책을 읽는다거나, 로봇을 가지고 논다거나.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는 그런 소소한 일상조차 이제는 기억에 없으니 아마 형도 내게 애정이 없을 터다. 다시 한 번 한숨을 내뱉고 복작거리는 장례식장으로 돌아왔을 때 지친 표정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어쨌거나 나와 쌍둥이 형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다가왔다. '민규야' 하며 나를 잡고 무너지는 어머니를 선뜻 안아주지 못했던 건 나에게서 형을 찾는 비어버린 눈동자를 봤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님 한 번도 안겨보지 못한 어머니의 품이 낯설어서인지. 여러 번 내 이름을 부르던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원우야' 하곤 정신을 놓으셨다. 찬기가 올라오는 바닥에 '전원우'를 부르고 혼절하신 어머니를 안아드리지 못하는 '김민규'는 입술을 깨물고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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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전해드리려고 뵙자 그랬어요. 그럼 전 이만"
"원...아니.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그랬죠? 죄송해요. 제가 자꾸 울어서"
"형이 그쪽 나쁜 맘 갖지 않게 잘 지켜봐 달라고 해서 싫다 그랬어요. 제가 싸가지가 없죠? 엄마 없이 자라서 그래요"
"아... 아니.."
"눈이 많이 오네요. 전 가볼게요"
"아 저기 잠시 만요. 조금만.. 더..."
"죄송한데 손 좀 놔주시겠어요? 그럼 이만"
우는 사람을 보는 건 질색이다. 어렴풋한 기억이 또 가슴을 쑤시고 피어 올랐다. 그 어느 날. 엄마 손을 붙들고 엉엉 울던 전원우. 난 아빠의 투박하고 거친 손을 잡았음에도 울지 않았다. 손을 들어 전원우의 눈가를 훔쳐 주려던 나의 행동은 감싸듯 전원우를 껴안는 엄마에 의해 저지됐고. 전원우는 잡히지 않는 내손을 잡으려는 듯 고 하얗고 여린 손을 재차 뻗으며 엄마에게 끌려갔더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별장소가 놀이공원이라니. 이제 생각하니 우리 쌍둥이를 위한 마지막 배려였던가 싶다.
전원우의 유언으로, 전원우의 공간정리는 온전히 내차지가 됐다. 바싹 마른 손을 들어 내 손을 잡으려던 어머니를 외면하자 귓가에 전화로 들었던 전원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규야, 그러지마. 너 그러면 안 돼' 그 언젠가 고등학교를 그만둘 거라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전화 한통이 왔었다. '민규야, 그러지마. 너 그러면 안 돼' 13년 만에 처음 들은 내 쌍둥이 형의 목소리였다. 너 그러면 안 돼. 하고 부드럽게 날 꾸짖던 전원우의 목소리가 완고했던 내 맘을 돌렸다. 짧은 1분여의 통화에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전원우도 잘지냈니? 밥은 잘 먹고? 아버지는 잘 계시지? 따위의 말은 꺼내지 않고 툭하니 전활 끊었었다. 끊겨버린 전화를 붙들고 내가 중얼거렸더란다. 너 같음 잘지냈겠냐? 너는 밥이 목으로 넘어갔냐? 너와 날 갈라놓은 어머니는 잘 계시냐? 한참을 끊겨버린 전화길 붙들고 중얼 거렸던 그 18살의 겨울이 전원우 너에겐 지독하게 아픈날이였단걸 난 이제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다 여러번 손이 미끄러졌다. 너와 나의 생일. 서로를 갉아먹기위해 태어난 우리의 날. 내 맘과 달리 경쾌한 소리를 내며 전원우의 세계가 열렸다. 훅 끼쳐온 향이 전원우의 것임이 분명했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딱 전원우 스러운 향이었다. 넌 그러면 안 돼. 하는 단단하고 담담한 목소리의 전원우가 가질 수 있는 향. 이곳으로 들어가면 난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땀이 베인 손을 바지춤에 문질러 닦고 발을 내딛었다. 아아, 이곳은 지옥이었다. 전원우가 없는 나의 세계가 그러했듯이 김민규가 없는 이곳도 그러했다. 원우가 썼던 작업실이 그러했고. 잠들었을 침대가 그러했으며, 쇼파만 덩그러니 놓인 거실이 그러했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렸던 게 언제였는지 짐작이 될 만큼 슬쩍 손을 대 만져본 파레트에 눌어붙은 유화물감은 딱딱하니 굳어 있었다. 먼지가 내려앉지 못하게 자신만큼 하얀 천을 덮어놓은 캔버스를 바라보던 내가 쉽게 천을 거둬내지 못함은 무엇 때문인지. 푸른 새벽, 나에게 찾아와 어머니를 부탁한다 민규야, 그리고 너를 부탁한다. 나의 분신 민규야. 하며 고갤 떨구던 전원우가 떠올랐다. 그 날처럼 엉엉 울기 시작한 전원우를 다독여주지 못했다. 날 저지하는 어머니는 없었지만, 난 내 검은 손을 끝내 하얀 전원우의 얼굴에 가져다 댈 수 없었다. 아이처럼 울던 원우를 보고도 민규는 울 수 없었다. 곧 자신이 죽어버린다고, 사라져 버린다고. 이제 우리 둘은 영영 이별이라고. 목 놓아 울던 원우를 보고도 그렇게 민규는 담배만 줄줄 피웠더란다. 폐암으로 죽어가는 자신과 닮은 원우를 보며 울수도 없던 민규는 담배연기만 삼키고 삼켰었다.
"꺼져"
"제발..."
"전원우가 나한테 맡긴 일이야. 더 심한 소리 하기 전에 가"
"도와주게 해주세..."
"우리가족이 왜 헤어지게된줄 알아? 전원우가 말한 적 없지? 전원우랑 내가 붙어있음 안됐거든. 우리 고작 다섯 살 이였는데도 똑똑하신 우리 부모들이 깨닳은거지. 아, 미리 떼어놓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나"
"......"
"김원우, 김민규가 서롤 갉아먹고 결국엔 둘 다 죽겠구나"
덩그러니 놓인 쇼파에 몸을 깊숙이 누이고 어두운 방 곳곳을 응시했다. 이곳엔 전원우가 있기도, 없기도 했다. 어스름이 푸른빛이 감도는 창밖을 내다보다 눈을 감았다. 다 태워 주세요.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들은 건지 만건지. 하얀 캔버스들을 살피는 심부름센터 직원이 고갤 갸우뚱 했다. 아니, 학생은 뭔 자기만 잔뜩 그려놨어? 이런걸 자...자 뭐라 그러더라. 근데 이걸 다 태운다고? 아깝게시리. 대꾸 없이 눈을 돌려 버렸다. 궁시렁 거리던 심부름 센터 직원이 이건 너무 커서 오늘 못 가져가. 다시 올게 학생. 하고 현관을 나섰다. 슬리퍼를 끌고 다시 들어선, 이제는 텅 비어버린 전원우의 작업실. 작업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회전목마에 앉아 서로를 보고 웃고 있는 너와 나. 혹은 나와 너였다. 내평생 손대지 못했을 전원우의 웃고 있는 얼굴을 한참이나 쓰다듬어 내리고, 다시 새벽이 찾아온 베란다 너머로 발을 디뎠다. 그 언젠가 내가 너에게 뻗었던, 닿지 못했던 거뭇한 손이 허공을 가르고 마지막으로 전원우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거렸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의 분신 민규야, 그러지마. 너 그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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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15 [민원]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