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불만이 있는 듯 했지만 부러 말로 하지 않는 거보니 분명 그 불만은 자신에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곳 모든게 맘에 들지 않는다. 고갤 아무리 돌려봐도 보이는 건 논, 밭이요. 소가 울었고 목줄이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은 몸집이 꽤 컸다. 삼일 전쯤 날 이런 시골에 버리듯 두고 간 부모님의 뒷모습이 머릿속에 영상처럼 재생됐다. 회사가 조금 안정되면 바로 데리러 올게. 영상이 멈췄다. 안정은 무슨. 다 망한 회사, 누가 기대라도 한대? 나는 이 곳 모든 게 맘에 들지 않았다.
논도 밭도 소도 개도.
학교는 무척 작았다. 한 학년에 한반씩, 고작 세반이 다였다. 3학년 1반. 시설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삐걱거리는 나무마루를 상상했다. 그리고 온갖 흠집과 낙서가 가득한 나무 책상도. 그러나 민규의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장판이 깔린 교실과 깔끔한 책상, 의자는 듀오백이였다. 의외였다. 그리고 짝 없이 혼자 앉아 있다가 조용히 하얀손을 들어 올린 원우도 의외였다. 꼭 팔랑 거리는 종이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교실을 둘러보자 그 의외성은 사라졌다. 역시는 역시였다. 촌스러운 시골 아이들만 득실거렸다.
중국에서 온 친구니까 텃세랍시고 따돌리지 말고 잘해줘라. 촌스런 양복을 입은 담임은 쿨럭 기침을 하며 교실을 나섰다. 서울에서 왔는데요. 집어삼킨 말 대신 한숨을 쉬며 빈 책상으로 걸어가자 허공을 떠돌던 다수의 눈동자들이 기다렸단 듯 박혀왔다. 사람 좋은 척 웃어 보이려다 그냥 입을 굳게 다물기로 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모든 것에 짜증이 났다. 가방을 대충 책상에 올리고 풀썩 주저앉자 하얀 종이같은 애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날 바라봤다. 종이냐. 입을 떠나 나온 말에 되레 내가 놀라 미간을 찌푸리자 눈을 더 가늘게 떴다. 교실 뒷문이 부산스레 열렸고 하얀종이가 자리에서 일어서 곁을 지나쳤다. 풀냄새가 났다. 교실에 퍼져있던 시큼한 사내놈들 냄새 사이로 푸릇한 향이 민규의 코를 파고들어 머릿속을 간질였다.
민규는 본래 자기 편할 대로 행동하는 부류였다. 중국에서 잘 커가던 사업을 한국까지 확장시킨 부모를 따라 가족 모두가 7년 전 한국으로 왔다.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쭉 중국에서 자랐기에 민규는 중국이 더 편했다. 민규는 곧 억눌렀던 성향을 펼쳐냈다. 잘생긴 얼굴, (너무) 큰 키 답지 않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그리고 꽤나 매서운 주먹으로. 민규는 점점 구역을 넓혀가며 또래집단 속에서 조용하지만 충분한 영향력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 성향은 어딜 가질 못했다. 본능적으로 이 작은 시골 학교의 윗선을 찾아냈다. 그리고 웃으며 빼앗아냈다. 그 모든 게 이루어진 것은 순식간 이였고, 그것은 그저 당연한 수순인 냥 잡음이 없었다.
"교무실로 오래"
원우는 아무 감정 없는 어투로 담임의 지시를 전달했다. 그리곤 조용히 다음교시를 준비했다. 민규는 비딱하니 앉아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톡 토옥.톡톡. 톡. 누군가에게 보내는 암호 같았다. 그 누군가는 그저 비어있는 칠판만 응시했다. 원우는 자신의 세계에 민규는 포함되지 않은 양 행동했다.그 행동에도 민규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그것은 그저 배 같았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보았던 바다위의 표류자. 를 실은 배말이다. 원우는 파도가 넝실거리면 자신도 넝실거렸고, 잔잔하니 멈추어서면 또 그대로 멈추어 섰다. 언젠가 들었다. 뒷산에 모여 담배를 나눠피고 빈 하우스에서 소주를 나눠마시는 소위 '노는 애들'은 '재수 없는 전원우'가 서울에서 왔다 했다. 3개월 전쯤 아무도 모르게 마을에 나타났다고 했다. 재수 없는 전원우는 언제가 됐든 자신이 나타났던 푸른 새벽녘 이슬처럼 사라질 작정인 듯 마을의 모든 것들에 정을 주지 않았다. 원우의 하얀 얼굴에는 아무 의미도 담겨 있지 않아보였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 미친소처럼 날뛰는 민규와는 태생적으로 달라 보였다. 민규는 모든 것에 관여했고, 물론 그것들 중 하나에는 원우도 포함 되었다. 원우는 모든 것을 방관했다. 물론 그 모든 것에는 민규도 포함 되었다.
민규 곁에 선 까만 놈은 종종 원우에게 시비를 걸었다. 백원짜리 몇 개를 던져주며 빵을 사오라 하기도 했고, 원우가 군말 없이 사온 빵이 마음에 안든다며 한입 베어 물고 원우에게 던져 버리기도 했다. 원우는 시키는 대로 시켜졌고 밀치는 대로 밀쳐졌다. 교실 벽에 등을 기대앉은 민규는 오늘도 그저 밀려나는 원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까만 얼굴을 한 몸집만 커다란 놈 이름이 뭐였더라. 석.... 석. 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원우의 머리 위로 검을 물이 쏟아져 내렸다. 뚝. 뚝. 비릿한 냄새가 교실에 퍼졌고 민규는 그 몸뚱이 이름이 석대임을 알아챘다. 석대. 강석대. 민규는 그 돌같은 이름을 몇 번 입에 굴렸다. 아드득. 돌이 갈렸다.
걸레 빤 물 좀 뒤집어 쓴게 대수냐. 몸뚱이의 낄낄 거리는 목소리가 조용한 교실에 울려 퍼졌다. 그래, 대수는 아니지. 라고 말하는 듯 한 원우의 행동에 몸뚱이는 더 심기가 뒤틀렸나 주윌 훑으며 눈을 번득였다. 단정케 일어선 원우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교실 뒷문을 나선게 더 빨랐고, 두 번째로 빠른 것은 민규의 다리였다. 우당탕 거리며 나뒹군 몸뚱이는 억울하다는 듯 민규의 이름을 외쳤다.
"책상"
검은 물이 튄 민규의 책상이 들어 올려졌다. 으아악! 볼품없이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감싼 몸뚱이 옆으로 민규의 책상이 아슬아슬하게 내리 꽂혔다. 더럽잖아. 민규의 검은 컨버스가 몸뚱이 누런 교복에 발자국을 남기고 떠났다. 강석대. 다시 한 번 민규 입안에 굴려진 이름이 으드득 갈렸다.
"그런다고 더러운게 깨끗해지나"
검은물이 어느 정도 빠진 셔츠를 탈탈 털며 원우는 표정이 없었다. 빨가니 언 손을 가진 원우는 민규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화장실을 빠져 나갔다. 오롯이 혼자 남은 민규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원우는 전혀 더럽지 않았다. 풀냄새만 가득했다. 민규는 진짜 자신이 이상하다 생각했다. 더러운 화장실에서 고갤 갸웃대는 자신이 너무나 이상했다.
괴롭힘이 멈췄다. 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은 수면 아래로 스몄을 뿐 더욱더 원우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원우는 늘 같은 시간 교실을 들어서고 교실을 나섰다. 민규의 눈길은 원우를 쫓다 못해 절절이 뒤따르는 지경에 이르렀다.가 갈곳을 잃었다. '재수 없는 전원우'가 사라졌다.
논도 밭도 소도 개도 다 남고.
'재수 없는 전원우'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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