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았다 떠도 옆자리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재수 없는 전원우가 사라진지 딱 삼 주차였다. 주인을 잃은 자리는 버석하게 말라갔다. 그러다 종국에는 그 자리마저 창고로 치워졌다.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린 원우의 사물함, 그것은 주인을 닮아 텅 비어 있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전원우가 사라졌다.
민규의 검은 컨버스가 반쯤 열린 초록색 대문 앞에 멈춰 섰을 때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그래 어쩌면 저 안에 아직 전원우가 있을지도 몰라. 우습지도 않은 생각에 녹슨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전원우? 훅 하니 풀냄새가 끼쳐왔다. 여기는 뭐 하러 왔어? 풀냄새가 말하고 있었다. 재수 없는 전원우는 이곳에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김민규 너 더 탔냐?"
"닥쳐"
앞에 놓인 치킨을 탁하니 치고는 닭쳤다! 하고 의기양양하게 웃는 석민의 팔을 가볍게 친 민규가 웃었다. 서울은 이 년 만이었다. 민규네 아버지 회사는 금방 회복했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지만 민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졸업을 하고 그곳에서, 그래 기다렸다. 전원우가 없는 그 초록 대문 집 마당에 꽃을 심고, 내려앉은 지붕을 고치고, 어긋난 부엌문을 고치며 기다렸다. 민규 키보다 낮은 담장 너머로 간간이 풀냄새 섞인 바람이 불었고 민규에게 물었다. 너 왜 아직도 여기에 있니? 그럴 때마다민규는 그냥 웃었다.
농장에서 하얀 장미 모종을 사와 심고 있던 민규는 별안간 닥친 아버지의 수하들에게 모종삽을 든 꼴사나운 모습 그대로 서울로 이송됐다. 쯧 하고 혀를 차는 자신의 아버지가 늘 하는 말인 언제까지 깡촌에서 흙이나 만지고 있을래. 소리를 대충 흘려듣고민규가 옷에 묻은 흙을 부러 탁탁 털며 일어섰다. 으 서울 너무 싫어 으 콘크리트 냄새. 부러 코까지 막아 쥐고 회장실을 나온 민규가 다시 벌컥 회장실 문을 열었다.
아버지 나 다시 데려다 놔. 차비 없어
가끔 민규는 지금의 선택을 의심했다. 서울로 가야 할까? 싶었다. 자신을 '재수 없는 전원우'라 불렀던 얼음장 같던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까. 돌아올까 전원우.
녹이 잔뜩 슨 초록 대문 앞에 멈춘 전원우는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민규는 자신보다 낮은 담 너머를 힐끗 바라봤다. 듬성듬성 자라난 잡초들은 키가 꽤나 컸다. 전날 내린 비가 남긴 흔적인지 움푹 파인 흙마당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있었다. 조그만 마루에 가방을 툭 올려놓은 전원우는 아직도 담 너머에 있는 민규를 쳐다봤다. 담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원우는 강석대가 낄낄 거리며 일부러 튀긴 진흙이 잔뜩 묻은 전에는 자신처럼 하얗던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눈짓으로 민규를 불렀다. 라면은 있어.
토닥토닥 장미 모종 위에 흙을 올려 다듬고 민규는 그제야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아구구 무릎아 허리야. 민규가 앓는 소리가 낮은 담장을 타고 넘어갔다. 그 어느 날 담장 밖에 서있던 자신을 보던 전원우가 생각났다.
라면이나 먹을까...
"김민규. 진짜 너 여기 사네"
민규가 라면을 막 한 젓가락 들어 올렸을 때 초록 대문이 열리고 하얀 운동화가 들어섰다. 민규는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놨다. 오랜만이다.
민규는 남은 맥주를 마시고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딸랑, 소리와 함께 야 이 개새끼들아. 하는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와서 다시 자리에 앉은 건 아니었다. 동창회를 한다고 했다. 어쩌면 전원우가 오지 않을까. 물론 멍청한 생각이었다. 전원우는 이들에게 동창생이 아니지 않은가. 민규는 욕을 하지 않고는 말을 하지 못하는 석.... 그래. 강석대를 힐끗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 김민규. 누런 이를 보이며 친한 척을 하는 강석대를 무시하고 돌아서자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김민규 벼엉신. 너 전원우 그 재수 없는 새끼집에 산다며? 전원우 새끼는 딴 놈이랑 붙어먹는 줄도 모르고.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간신히 내려놓는 민규를 비죽 비웃던 석대는 결국 주먹 대신 올라간 기다란 다리에 무참히 차이고 입을 열었다. 아니 그새ㄲ 전원우가 보이길래 반가워서 아는 척 좀 하려고 갔는데 검은옷 입은 등치들이 잔뜩 와서 모시러 왔다고 지극정성으로 모셔가는 거야. 그게 하나밖에 더 있냐? 뭐야 그 모른다는 표정은... 형님 이거. 새끼손가락을 올리며 씩 웃는 석대. 전원우 고게 재수 없긴 했어도 하얗고 반반하긴 했.. 으아악!
지붕도 고치고 부엌문도 고치고 마당에 너 닮은 하얀 꽃도 심었는데. 한숨 섞인 민규의 중얼거림에 바람이 불었다. 풀냄새가 났다. 잘 자 김민규.
잠이나 자란다.
역시 재수 없다 전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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