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호구 입장하시고'
귀에 꽂아 놓은 소형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지훈의 목소리에 원우가 슬쩍 문 쪽을 바라봤다. 이번 공사 틀어지면 우리 다 위험해지는 거야. 머릿속에 윙윙 울리는 승철의 목소리에 원우는 입에 걸리는 얼음을 아작 씹어 삼켰다. 딸랑 경쾌한 소리와 함께 카페 문이 열리고 이번 호구, 그러니까 국회의원 아들이 불안한 듯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꼬리를 말고 기는 듯한 남자의 모습을 보며 정장 차림의 원우가 태연하게 입안에 얼음을 굴렸다.
'잠깐. 뒤에 뭘 달고 들어오는 거야 저 새끼는. 원우야 아직 움직이지마'
아그작.
입속에서 아작난 얼음이 날카롭게 볼을 찔러왔다.
'공사 틀어'
씨발. 욕과 함께 앞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달려오는 형사 둘에게 골고루 나눠 뿌리고 달리기 시작한 원우는 달리기를 꽤 잘했다. 굳이 말하자면 달리는 건 싫어하지만, 재능이 있었다. 미리 확인해두었던 도주로를 따라 달리는 원우 옆으로 검은 차가 바짝 따라붙었다. 내가 더 빠를 거야. 원우는 쓸데없이 검은 차와 경주를 하다 결국 창문을 내린 승철에게 욕을 얻어먹고 나서야 달리기를 멈췄다. 미친놈아. 원우는 귀를 때리는 승철의 찰진 미친놈 소리에도 숨을 고르느라 대꾸해줄 수가 없었다. 한참 욕을 하다 지친 승철이 다시 조용히 차를 몰았다.
"배? 나 팔려가? 새우잡이?"
"아는 형님이야. 그 집 가서 기다려 연락할게"
"아 뭐야. 공사 조금 틀어진 거 가지고 쪽팔리게 섬으로 도망가라고?"
"전원우"
원우가 입을 삐죽 내밀고 조수석에 늘어지자 승철이 단호한 표정을 하고 입을 열 준비를 했다. 원우는 그냥 입을 합하고 다물었다. 입을 잔뜩 내고 손을 내민 원우의 하얀 손 위에 여서도행 티켓 한 장을 올려준 승철의 표정이 진지했다. 여서도로 가려면 한 번 더 배를 갈아타야 한다는 승철의 말에 원우는 벌써 비린내가 나는듯해 인상을 썼다. 그런데도 승철의 검은 차는 뭐가 그리 급한지 멀뚱하니 서 있는 원우를 두고 쌩하니 가버렸다.
"아, 진짜 갔네. 그럼 나도 가볼까? 서울~ "
원우가 한 발짝 움직이자마자 울리는 전화에 단호한 승철의 목소리가 웅웅 거렸다.
'너 서울로 올 생각 꿈에도 하지 마'
할 말만 하고 뚝 끊긴 전화기에 대고 원우가 메롱! 하고 혀를 내밀자 지나가던 아줌마 아저씨들이 멈춰 서서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우는 고민했다. 약 3초. 원우는 어려서부터 포기가 빨랐다. 빨리 포기하면 편해요. 서울로 가려던 맘을 접고 배에 올라타기로 했다.
아 맞아.
원우는 급하게 슈퍼로 달려가 새우깡 한 봉지 사 들고 룰루랄라 배에 올라탔다.
"비둘기야 구구구~ 맘마 맘마 마암마~~"
"총각"
"구구구구구. 네?"
"저건 비둘기가 아니고 갈매긴디?"
"갈매기는 어떻게 울어요?"
"......끼룩..?"
'여서도'라고 쓰여있는 커다란 돌을 보며 원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여기 이거 아니잖아.... 배 타기전에 담배 박스로 사올걸.... 원우는 갈매기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새우깡 봉지를 움켜쥐고 터덜터덜 승철이 알려준 이상한 벽화가 그려진 집을 찾기로 했다. 아 저긴가 봐.. 원우는 자신에게 있는 짐 하나, 새우깡 봉지를 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또 뭔 양아치 새끼를 보낸 거야"
"말이 심하시네 아저씨"
양아치랑 나는 급이 다르지. 나는 사기꾼이고. 하며 씩 웃는 원우를 보고 집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저기 아무 방이나 들어가 자빠져 자든가."
어망을 어깨에 올리고 원우를 지나쳐서 쿨하게 집을 빠져나가는 남자를 보며 성격 맘에 드네. 중얼거린 원우는 마루에서 제일 가까워 보이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물론 이유는 마루에서 제일 가까워서였다. 피곤해 잘래. 원우는 소중한 새우깡을 머리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
원우는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해봤다. 누워서 바라보는 천장이 낯선 게 집은 아니고, 조용한 게 아지트도 아니고. 난 전원우, 여긴 어디?
"아 맞다 나 쪽팔리게 도망 왔지"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인지 다 잠긴 목소리로 자신의 처지를 확인한 원우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섬에 입고 들어왔던 정장 차림 그대로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흔한 스팸 문자 하나 오지 않았다. 아니 나는 지금 섬에 있는데 연락 한 통 없다고? 섬이라 핸드폰이 안 터지나?? 원우는 막 잠에서 깬 탓에 돌아가지 않는 머리에 팀원들 상황도 좋지 못할 거란 생각은 못 하고 마냥 서운해서 입을 삐죽거리다가 촌스러운 분홍색 꽃이불이 발끝에 걸쳐 있는 상황이 웃겨 웃음이 터졌다. 원우가 피식 거리면서 웃다 입을 삐죽거리다 반복하는데 벌컥 하고 방문이 열렸다.
"밥 먹고 다시 자빠지든가"
"맛있는거.."
"뭐"
"맛있는 거 있어요?"
집주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방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원우는 갈아입을 마땅한 옷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다 가지런히 개켜있는 빨래를 보고 츄리닝을 주워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나 오래 잔 거 같은데 여적 낮이야?"
"......시계가 한 바퀴 돌았다는 생각은 못 하고?"
아아~ 그래서 이렇게 배가 고프구나. 원우는 마루에 차려진 밥상 앞으로 슬슬 걸어갔다.
"으익"
"밥상머리 앞에 두고 뭐 하는 짓?"
코를 틀어막은 원우가 근래 들어 빠른 모습으로 뒷걸음질 쳐서 마루 끝으로 달려갔다. 나 해산물 못먹는데에..... 코를 막고 있어 지잉징 거리는 목소리로 원우가 반찬 투정을 했다. 집주인 미간에 인상이 잡혔다.
"에이씨 그런다고 밥상을 그냥 치우냐아..치이"
집주인 김씨가 밥상을 던지듯이 치웠다. 김씨는 무척 화가 나는 듯 안 처먹을 거면 다시 죽은 듯이 잠이나 쳐자!! 하고 씩씩거리면서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 원우는 다시 집에 혼자 남겨졌다. 진짜 이상한 집이야. 벽에는 이상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방과 방은 전부 연결되어 있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마당 한쪽에는 조그만 텃밭이 있는데 그곳이 유일하게 원우 마음에 들었다.
원우는 마루 아래 아무렇게나 놓인 슬리퍼에 발을 대충 끼워 넣고 동네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원우는 천성이 느렸다. 느리게 느리게 작은 섬동네를 돌았다.
"와 아무도 없어. 젊은이 아무도 없어. 전원우말고 젊은이 찾을 수 없어...."
원우는 젊은이 찾기 겸 섬투어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원우는 배도 고프고 자신이 왜 여기 있나 싶어서 공허해졌다. 슬슬 해가 져가고 원우는 장초를 꺼내와 성스럽게 물었다. 시발.... 여기 슈퍼에 담배는 팔겠지...? 따위를 생각하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행복하게 빨아들였다.
마루에 앉아 다리를 꼬고 마지막 담배를 행복하게 피는데 끼익 하고 대문이 열렸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민규가 들어오..다가 멈칫했다. 여기 우리 집 맞나? 눈을 한 번 꿈뻑이고 대문으로 가서 문패를 확인했다. 김상규. 어...우리집 맞는데..
원우는 그런 민규를 위아래로 스캔했다. 좃고딩. 단정한 교복. 그와는 다르게 흙이 묻은 운동화로 보아 운동을 좋아함. 고로 수업은 수업 운동은 운동 뭐든 열심히 하는 타입. 자신의 집에 모르는 사람이 있음에도 자신이 집을 잘못 들어온 게 아닐까 싶어서 문패를 확인하는 것을 보아하니 나쁜 사람을 못 만나본 순둥이 섬소년. 그리고 마지막은…. 잘생겼네.
"누구세요?"
"너는 누구세요?"
아아 사기 치고 싶은 타입이야. 원우의 가느다란 눈이 반짝였다.
민규는 자기 집 마루에 앉아 자신의 츄리닝을 입고 담배를 피는 남자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저는 이 집 아들입니다. 라고 말하자 담배 연기가 얼굴로 훅 끼쳐왔다.
"아~~~ 우리 자기 아들이구나?"
"......네?"
"아들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나 사기 당한 건가?"
그래도 잘생긴 아들 생겨서 기분 좋네. 아빠라고 불러볼래?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원우를 보고 민규는 어안이 벙벙해서 말을 더듬었다.
"자기..라고 하면.. 저기 혹시 집을 잘못 찾으신 거 아니신가요?"
원우가 그건 아니라는 듯 씩 웃고 고갤 저었다.
"저희 어머니는 삼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민규의 말에 원우는 짐짓 당황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멘트를 날렸다.
"게이"
"...네?"
"나 게이야"
"아...."
대문이 열리고 갑자기 찾아든 객식구 반찬 투정에 뭍으로 고기 사러 갔던 김씨가 걸어들어왔다. 원우는 조꼬딩 어디 한번 놀라자빠져 보렴? 하고 낭창낭창하게 김씨한테 달려갔다. 원우는 검정 비닐봉지를 든 김씨 팔짱을 턱 하니 끼고 콧소리 장착했다.
"자기 왔어?"
민규는 뜨악하고 입을 벌리며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원우는 흡족하게 웃었다. 김씨는 무표정으로 원우 뒤통수를 내려쳤다. 뽷!!!! 소리가 김상규 씨 집 마당에 울려 퍼졌다.
사기꾼 새끼야 고기나 처먹자.
텃밭에서 상추를 따서 씻고 있는 민규 등판을 보고 원우는 저 등판을 또 어떻게 놀려줄까 고민했다. 김씨는 불판 위에 고기를 턱턱 올려놓고 원우 술잔에 소주를 콸콸 쏟아줬다.
"해산물도 못 먹는 놈이 섬에서 어떻게 버티려고 기어들어 온 거야"
"고기 맨날 사주면 되잖아"
김씨가 인상을 썼다.
"요"
얌체 같은 원우가 얼른 요자를 붙였다.
여서도에 보기 드문 조합의 식사자리가 이어졌다. 원우는 고기를 열심히 싸 먹으며 텃밭 최고! 상추 최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김씨는 소주를 물 마시듯 먹었다. 민규는 고기를 구워 엄지를 치켜드는 텃밭요정 접시에 올려주기 바빴다. 그렇게 여서도의 밤이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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