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서도 2

2017. 11. 29. 12:59 from Text3

뭔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원우가 인상을 쓰며 손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았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내려놓는 원우의 시야에 검은 무언가가 잡혔다. 히익 하고 숨을 들이마신 원우가 더듬더듬 던질 물건을 찾았다. 아직 할부가 남은 아이폰7은 소중했다.





"깼어요? 죄송해요... 교복 셔츠가 이 방에 있어서 더 주무세요"

"........"

"근데 그거 던지실 건 아니죠?"






수학의 정석을 쥔 원우의 손이 조금 부들거렸다.












물안개가 잔뜩 껴있는 마당에 원우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민규는 그런 원우의 허우적거림을 보고 조용히 웃었다. 꼭 행사장 앞에 서 있는 기다란 풍선 같다고 생각했다. 팔다리가 길고 가늘어서 그런가 따위도 생각했다.




"원래 이렇게 일찍 가?"

"학교 가는 길에 누구랑 대화 하는 거 처음이에요"

"내가 아직도 사람으로 보이니..."













잘 다녀와~ 집에 올 때 담배 사 오는 거 잊지 말고? 얼이 빠진 표정의 민규를 싣고 배가 출발했다. 원우는 민규의 츄리닝 소매로 다 덮인 기다란 팔을 열심히도 흔들었다. 민규는 바로 전에 꼴사납게 골목에서 넘어지며 부딪힌 엉덩이에 묻은 흙을 탁탁 털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아저씨야 정말.











민규를 배웅한 원우가 슬리퍼를 찍찍 끌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망을 어깨에 무심하게 올린 김씨와 마주쳤다. 원우는 아는 얼굴에 내심 반가워 손을 흔들어 김씨를 배웅했다.




"아저씨 소고기 잡아와요~~~~~"


고개만 까딱이고 원우곁을 지나쳤던 김씨가 어망을 툭 내려놨다. 그리고 길바닥에 흔하게 널린 짱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원우는 슬리퍼를 고쳐 신고 골목 끝으로 달려갔다.






"하 담배 땡겨... 김민규 언제 와 담배.."


마루에 벌러덩 누운 원우가 떠난 지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은 민규를 찾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울린 전화에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헤이~~~ 와썹

"와썹이고 개썹이고"

-원우. 너 괜찮아?

"해산물.....섬...나...최승철...일부러..."

-하하하 퍼니^^ 설마 리더가 일부러 그랬을까? 나도 집에 왔어

"미국 집에 요트는 없어?"

-있지

"출발했어?"

-뚜..뚜..뚜..





매정하게 끊긴 전화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원우는 생각했다.

"그사세 쩌네....쩝. 오~~ 요트 있으면 울 잘생긴 아덜램 학교 가기 편하려나?"



"오호홓 울아덜램 바람과 흰 천만 있으면 학교에 갈 수 있지."




어떤 말을 해도 받아주는 이가 없자 원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곧 잠이 들었다.











"아 심심해. 진짜 너무너무너무 심심해."

원우는 조그만 민규의 방에서 이쪽으로 뒹굴 저쪽으로 뒹굴 굴러봤다. 그러나 툭 불거진 원우의 척추뼈에 닿는 건 촌스러운 벽지가 발린 벽과 노란색 장판뿐이었다. 여서도의 낮은 조용했다. 뱃일과 작업을 하러 가 비워진 집들, 물론 김씨의 집고 마찬가지였다.

"김민규 언제 와 나 진짜 너무 심심해."


혼잣말을 하며 또 오른쪽으로 뒹굴. 왼쪽으로 뒹굴.


"김민규 방이나 구경해볼까."





주인만큼이나 단정한 방이었다. 잘 개켜진 이불, 낮은 책상에 여러 권 꽂힌 책들. 원우는 책장 앞에 서서 신중히 책을 골라 들었다. 그리고 볕이 잘 드는 마루로 나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순영아"

"엉?"

"담배 사러 가자"

"그래 가ㅈ...뭐???"









"어.. 아니 우리 집 아저씨가 사다 주라고 해서..."

슈퍼 아저씨에게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 중인 민규는 여전히 교복 차림이었다.


"아니 제가 피려는 게 아니고요. 정말이에요. 우리 집에 잠시 사는 아저씨가 사다 주라고 하셔서. 정말인데... 못 믿으시겠으면 전화해보실래요? 아... 나 아저씨 번호 모르는구나...."




세곳의 슈퍼에서 쫓겨난 민규는 밍무룩하게 배를 타고 여서도로 돌아왔다. 멀리서 지켜보던 순영은 자신의 친구 민규가 순진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이제 좀 구분이 서지 않았다.












시무룩한 표정의 민규가 터덜터덜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마루에서 잠이든 원우를 발견하고 조용히 다가갔다. 원우의 손에는 자신의 책으로 추정되는 수학의 정석이 들려있었다. 민규는 무릎을 모아 안고 자는 원우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딱딱한 마루에 옆으로 누워있는 원우를 마당에 쪼그려 앉아 지켜봤다. 코앞에서 원우를 관찰하던 민규는 별안간 떠진 눈에 놀라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찌할 줄 모르고 어버버 하고 있는 민규에게 원우는 누워있는 상태 그대로 손을 내민다. 민규는 그래도 착한 아저씨구나. 감동하며 내민 원우 손을 잡는데 푸스스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니 멍멍아. 손 말고 담배"

민망해진 손을 거두고 빠르게 일어난 민규는 바지만 툭툭 털었다.


"고등학생한테는 담배 안 팔아요."


원우는 바로 앉아서 기지개를 켜며 태연한 얼굴을 했다.


"응 알아^^"



















"아저씨"

"형"

"형씨"

"...뭐?"

"형이랑 아저씨를 합성해봤어요"

"너무 줄인 거 아니고?"

"핸드폰 번호 알려주세요"



슬리퍼 찍찍 끌며 자신을 따라오는 원우를 힐끗 보며 민규가 말했다. 핸드폰으로 열심히 게임을 하던 원우가 민규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말했다.

"나 폰 없는뎅?"

"그렇구나"






민규와 핸드폰이 없지만, 핸드폰 게임을 하는 원우가 도착한 여서도 유일한 슈퍼는 문이 잠겨있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자주 비우세요."



원우의 절망적인 표정에 민규는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슈퍼 문 옆에 있는 벨을 눌렀다. 짜식이 진작 눌러야지.










"그거 맛있어요?"

"쓰읍"

"그냥 물어본 건데"

"쪼꼬만게"

"키는 내가 더 큰데"

"원래 피는 거만 못한데 맛있네."


민규는 허공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 한 번. 담배 피우는 원우 옆모습 한번 봤다.







"형씨 연기랑 얼굴 같이 보니까 그거 같아요."?

"뭐 도깨비?"

"아니요"

"...?"

"여신이요."









민규는 등에 닿는 서늘한 담벼락 온도에 흠칫 어깨가 떨렸다. 자신에게 점점 다가오는 원우의 허여멀건 한 얼굴을 보고 눈동자만 굴렸다.


"멍멍아"

"....."

"대답"

"ㄴ...네?"

"티 났어?"

"네??"



훅하고 담배 냄새가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원우가 씩 웃었다.



"나 여잔거 티 나냐고."



잠시 눈을 굴리며 상황을 파악 중인 민규를 보고 원우는 푸스스 웃으며 다시 슬리퍼를 끌고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또 거짓말이죠?"

후다닥 자신 곁으로 달려온 민규를 보고 원우가 글쎄?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확인해볼래? 별안간 민규의 커다란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다 대는 원우때문에 민규는 으헣 하는 꼴사나운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개똥을 밟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여서도 골목에 원우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삐졌냐?"

"아뇨"

"삐졌네 뭘"

"왜 따라오세요?"

"너 따라가는 거 아닌뒈? 나 산책 가는건뒈에?"



민규는 가방을 고쳐 들고 원우를 쳐다봤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산책이요?"

"나 원래 새벽 다섯 시 반에 산책하는 거 좋아해."


휘파람까지 불며 자신의 등굣길을 함께하는 원우를 보고 민규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현실감이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손을 대충 흔들며 원우가 돌아섰다. 민규는 그런 원우 뒷모습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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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지달 :